최건수_사진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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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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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떤 대상을 만나더라도 자기 스타일로 해석하고 읽어 낸다. 그러나 그 대상들은 오래 숙성된 된장처럼 낯익은 것들이다. 그는 처음 대면하는 대상들을 쉽게 띄지 않는다. 그가 움직이는 길 위에 낯익은 것들이 끝없이 사진가에게 프러포즈를 할 때 비로소 사진기를 꺼내는 사진가이다. 그래서 그의 단순한 이미지들은 보다 많은 이야기를 끌어안고 있다. 그것이 보일 때 김우영의 사진 읽기는 재미가 있다.
젊은 날의 빛과 그림
김우영은 1960년 사업을 하시던 부모님의 5남매 중 막내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억 중 가장 또렷한 것은 온 가족이 빈번하게 이사 짐을 꾸렸던 것이다. 아버지의 사업은 어느 한 곳에 정주하지 못했고 아버지를 따라서 가족은 유목민처럼 떠돌아야 했다. 부산을 떠나 서울로 입성(?)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중학교 시절에는 보이스카웃 활동에 열중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음악 듣기와 친구 사귀기 그리고 싸움질로 방황하며 시간의 여백을 채워 나갔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도 머리를 기르고 기성의 권위에 주눅들지 않는 혈기는 여전했으나 담임 선생님은 철이 덜든 아이의 ‘이유 없는 방황’을 끌어안고, 덮고, 녹여냈다. 담임의 사랑은 마침내 김우영으로 하여금 덮어두었던 책을 다시 펼치게 하고 책상에 앉게 했다. 위로 모든 형제들이 대학을 못 다닌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도 그가 책을 잡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밤낮없이 책에 매달렸고 본인도 믿지 못할 만큼 성적이 급상승했다. 그는 의대가 가고 싶었고 담임도 의심하지 않고 지원서에 사인을 하여 주셨다. 그러나 보기 좋게 낙방! 누구도 예기치 않은 결과였다. 일 년 후에 다시 도전하고 싶은 오기가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가족의 입장은 달랐다. 모두가 재수에 반대했고 특히 셋째 형님의 반대는 완강했다. 학교에 일단 입학하고 편입을 준비하자고 했다. 그래서 후기 대학인 홍익대학교 도시 계획과에 입학을 하게 된다.
이때까지 김우영은 미술이나 사진에 전혀 관심이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홍익대는 그가 보낸 3년간의 칙칙하고 권위적인 고등학교 분위기와는 달랐다. 새벽 공기를 뚫고 들어온 햇살처럼 산뜻하고 가벼웠다.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만난 이 신선함은 편입에 대한 계획을 희석시키면서 홍대생의 일원으로 남게 만들었다. 적극적으로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면서 방송반의 일원이 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래알 사진반’에 가입해서 사진에 눈을 뜨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 하지는 못했다. 대학 2학년이 되면서 대학가를 휩쓸던 데모대에 합류하기도 했고 영어나 수학을 가르치는 과외 선생과 음악다방 DJ 생활을 하면서 공부보다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아니 공부의 목적이 최종적으로 경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는 현실 감각이 생활 현장 속으로 밀어 넣었다. 대학 2학년이 끝나갈 무렵 가까운 친지들로부터 모금을 해서 이대 앞에 맥주 집을 개업할 만큼 탁월한 경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업은 대성공이었다. 학교 주차장에 몇 안 되는 승용차 가운데는 학생 김우영의 ‘포니’가 교수님들의 승용차와 나란히 서 있었다. 대학 축제 때는 3만 CC짜리 술통을 교내로 가지고 들어와 맥주를 팔았다. 이처럼 치열한(?) 경제 활동은 한 학기 학점 미달로 유급하는 사태를 가져왔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또다시 레스토랑을 차려서 운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 레스토랑은 맥주집만큼 잘 되지는 않는다. 이후에도 KBS에서 방송관계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국회 사무처 공무원으로 몇 년간 일을 하기도 했다.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변신이 시작된다. 물질적으로 궁핍하지 않게 살고 있지만 이것이 인생인가? 하는 회의가 찾아왔다. 그럴 때마다 그는 방황했고 외로웠다. 무엇인가를 다시 찾아야 했다. 일회적인 인생은 누구의 인생도 아니고 누구를 위한 인생도 아니었다.
상업 사진과 순수 사진의 이중적 구조
2000년에 들어서면서 그의 사진은 화려해졌다. 서울에 정주하고, 사진을 통해서 어느 정도 경제적인 면을 해결하고, 이름도 얻은 탓일까? 단순하고, 편안하고, 화려한 사진들이 2001년에 발표한 「Just here」이다. 형광색 배경 위에 주워 모은 각종 오브제들이 군더더기 없이 찍혀 있다. 이 유니크한 사진들은 마치 상업사진을 보는 것 같다. 단색 배경에 하나의 오브제(담뱃갑, 라이터, 약이 든 캡슐, 전구, 가위, 인형, 신발, 장난감)들. 그러나 너무 단순하다고 느꼈을까? 액자 역할을 겸하고 있는 아크릴 판에 흑백 풍경 사진을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하여 뒷면의 컬러 사진과 오버 랩 시켜 놓았다. 흑백 실크스크린은 모두 자연의 한 부분을 확대하여 놓았기 때문에 이미지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자세한 관찰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 모호함이 컬러의 명료함이 보여주는 상상력의 거세를 막아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형식은 앞서 언급한 ‘There after’에서 재해석되어 보여진다.)
즉 아래 놓인 화려한 대상들은 생활 속에서 흔히 만나는 인공 물체들로 또렷한 이미지를 드러내고 아크릴 판 위의 흑백 이미지는 어둡고 분명하지 않다. 그러니까 아크릴 판 위에 찍혀진 흑백 이미지를 보고 다시 맑은 투명 아크릴 판을 통해서 컬러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구조를 통해서 작가는 상업적 스타일(컬러 사진)을 순수 사진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부적절하고 관련 없는 이미지 겹치기는 상업적 이미지를 순수 예술 분야로 끌어드린 팝 아트 정신과 이어져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장식적이고 소비적 이미지들이 과연 문화 소비자들에게 예술 브랜드로 접근이 가능한 것인지를 타진하는 작가의 새로운 도전 영역으로 보인다. 그는 어떤 대상을 만나더라도 자기 스타일로 해석하고 읽어낸다. 그러나 그 대상들은 오래 숙성된 된장처럼 낯익은 것들이다. 그는 처음 대면하는 대상들을 쉽게 찍지 않는다. 그가 움직이는 길 위에 낯익은 것들이 끝없이 사진가에게 프러포즈할 때 비로소 사진기를 꺼내는 사진가이다. 그래서 그의 단순한 이미지들은 보다 많은 이야기를 끌어안고 있다. 그것이 보일 때 김우영의 사진 읽기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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