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환 _ 개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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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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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김우영 작가님의 작업실에서 갓 출력한 작품을 보다가 무심결에 작가님께 질문을 던졌다. “저거 어디서 찍은 거예요?” 돌아온 답변은 “그게 뭐 중요하나?”였다. 그 당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살짝 서운했다. 어딘지 말해주는 것이 뭐 어려운 일이라고….
시간이 지나서 작가님과 Death Valley와 Yosemite를 함께 다닐 기회가 왔다. 한번은 작가님이 매우 좋아하시는 촬영지 중 한 곳인 모노레이크에서 동트기 전에 촬영을 하시다 나에게 느닷없이 “저 물의 빛깔을 봐라. 너무 이쁘지 않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속으로 물의 색이 파랑 아니면 녹색인데 이뻐봐야 얼마나 이쁘겠나’ 생각하며 그곳을 쳐다봤다. 그 순간 내가 이전에 한 질문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모노레이크를 보고 있었는데, 작가님과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곳에서 다른 것을 보고 있다는 그 생각에 소름이 돋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가 아니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그곳’에서 자신만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었다. 그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에 그곳에서 원한 것을 얻기 위해 작가님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십 번도 넘게 같은 곳을 찾았고 그 순간을 찾아내고 있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어리석게도 그 장소에만 가면 작가님과 같은 멋진 장면을 나도 담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아주 순진한 생각을 했다. 아마도 이 책을 접하는 많은 분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제 나는 알고 있다. 그 순간을 만나기 위한 집요한 노력과 그곳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이 있어야 그런 작품이 나온다는 것을. 우리가 늘 보는 바다, 호수는 때로 폭포로, 얼음으로 남은 흔적의 모습이지만 김우영 작가의 시간과 시각을 통해 우리는 평소 생각지 못했던 이미지로 물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
자유롭고 에너지 넘치는 외로움
사막 한가운데서 그리고 거대한 호수를 바라보며 촬영을 하는 김우영 작가님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왜 그 단어가 머릿속에 맴도는지는 알 수 없지만, 꽤 오래 그렇게 느껴온 것 같다. 어쩌면 상업 활동을 정리하고 다시 순수예술로 돌아서야겠다고 결정하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혼자서 오롯이 해내야만 했던 그 시간 동안 작가님 스스로 느꼈던 외로움이 주변에도 전달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작가님에게서 느껴지는 외로움에는 슬픔과 우울함이 없다. 고요하고 정적인 이미지 속에서도 새롭게 시작하려는 생명력이 느껴지고, 요세미티에서 쏟아지는 폭포와 옐로스톤의 분수처럼 용솟음치는 이미지에서는 생동감과 엄청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작가님에게 외로움은 이러한 생명력과 생동감 그리고 에너지를 축적해가는 원천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외로워 보이지만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을 수 있고 작품 또한 엄청난 기운을 품고 있지 않나 싶다. 촬영을 위해 알래스카에 다녀오신 후 다 녹아버린 빙하 때문에 낙담하신 모습을 보이시다가 돌연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아이슬란드로 방향을 바꿔 훌쩍 떠나는 작가님의 모습을 보면 그에게 외로움은 자유이자 열정 그 자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엄청난 열정과 자유로움으로 전 세계 구석구석을 찾아다녔고 기어이 자신이 찾던 순간을 작품에 담아냈다.
어딘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에너지 넘치고 자유로운 외로움이 모든 것을 찾아냈고 찾아내고 있고 또 찾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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