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영, 시공을 수집하는 노마드 정신
- Hyejung Lee
- 2023년 8월 7일
- 4분 분량
신혜경 _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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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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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우영 작가의 초기 작품에 대해 글을 쓴 지 어언 30년이 지났다. 30대 초반의 자유로운 영혼으로 기억되었던 그는 지난 30년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자신만의 시공간을 구축하는 데 여념이 없어 보였다. 마치 카멜레온처럼 다양한 정체성의 옷을 갈아입으며 자신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데 모든 것을 건 사람처럼 자신의 퍼즐 조각을 수집하러 다니는 듯 보였다.
시공간 수집가
그는 감성적이며 개인적인 공간을 수집하는 작가였다.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사막에서, 바다에서, 버려진 산업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자신의 푼크툼(Punctum,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에서 소개된 개념)에 집중하며 그만의 디테일, 색깔, 질감, 구성을 만들어냈다. 푼크툼은 작가나 관객에게 분석적 시선에만 머무는 대상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감성적인 공명을 일으키는 힘을 말한다. 푼크툼의 작품은 지극히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 안에서 각자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작가는 풍경이 주는 오라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 감성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자신의 편린을 선택한다. 그 순간, 인간의 호기심, 고독, 욕망, 죽음 등 인간의 복합적인 심리체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풍경과 인간과의 관계, 특히 존재의 본성과 실존의 역설을 탐구하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사진 속 풍경은 비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역사와 이야기를 덧칠한 하나의 개념이자 구체적인 이미지로 드러난다. 앞의 풍경은 그 본성을 잃은 채 작가가 찾고자 하는 퍼즐의 한 조각처럼 완성된다.
사진가는 수집가이기도 하다. 시공간의 파편인 흔적, 기억, 추억은 사진이 찍히는 순간 화석화되면서 보편적 풍경의 성질을 잃고 작가의 시선으로 수집된다. 수집가는 좋아하는 것, 희귀한 것, 값진 것을 모으면서 그의 수집을 전리품처럼 사랑하고 아끼고 집착하며 소유한다. 사진은 어떤 의미에서 소유하고자 하는 물체, 사람, 상황이나 감정까지도 복제해 수집할 수 있다.
사진의 복제성은 실재의 소유를 대체하고, 사진이 갖는 오브제적 특성은 수집가의 소유욕을 충족시킨다. 작가는 사진기를 통해 세상을 발견하고, 사진의 고유성으로 그의 ‘감성적’ 발견물을 즉각적으로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우영 작가는 희귀하고 값나가는 물건을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감성의 표상으로서 시공간을 수집한다. 어떤 수집가는 물체가 없는 특이한 사건을 수집한다는 것이 불합리하듯이, 시공을 수집한다는 것 또한 불가능하게 느껴지지만 그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무엇보다 차곡차곡 수집된 작가의 이야기와 흔적을 그의 사진에서 느낄 수 있다. 그는 기존의 수집가와는 달리 인간 내면의 자아와 고독을 찾는 모험적인 여정 속에서 미국의 광활하고 거친 사막에서 그만의 컬렉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노마드 정신, 사막에 거주하다
거대한 사막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새벽의 미명 속에서 작가는 원하는 빛을 찾아 사막의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어슴푸레한 새벽 빛 속에서, 한낮의 강한 태양 아래서, 또는 붉은 오렌지빛으로 물든 석양 앞에서 그는 사막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린다. 사진가는 숨을 죽이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인 순간’처럼 그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사진에서 결정적 순간은 모든 요소가 하나로 어우러져 특정 장면의 본질과 의미를 담아내는 시간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주의 깊게 관찰하고 예측하며 빠르게 반응한다. 사진에서 과도한 조작이나 연출을 피하고 자연스러움을 강조하는 작가는 카메라에 표준렌즈 하나만을 장착한 채 사막을 주시하며 물아일체인 상태의 사막과 자연을 담아낸다. 이는 풍경 사진이 일반적으로 부여하는 선, 면, 형태, 구상성뿐만 아니라 순간의 감정, 스토리, 문맥을 포착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때는 조감도의 시선으로 내려다보기도 하고, 원근법적 시선으로 정리되기도 하고, 또는 지극히 평면적인 풍경으로 압축되면서 고정되지 않은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다양한 시선으로 그의 카메라는 사물을 포착한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움직임이 거의 없는 사막 풍경임에도 역동적이고, 의도적인 비대칭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순간의 긴장과 감정을 담아내는 결정적 풍경으로 완성된다.
사실 사막은 형태적으로는 도시나 숲에 비해 단조롭다. 그러나 사진이 표현할 수 있는 빛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모색하는 데 좋은 주제다. 그래서 작가는 사막 특유의 빛과 색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러한 빛과 색은 사막의 원초적이고도 거친 모습을 강조하고, 모래 언덕이나 돌들의 형태와 질감은 지구의 원시 풍경을 연상케 한다. 그의 사막 시리즈는 베이지색과 야수파적인 색으로 그의 화면을 붉게 물들이고, 초록과 보라, 흰색이 대비된 조형적 언어는 원시 사막의 야성을 잘 표현하고 있으며, 보색의 조합이 절묘하게 혼합된 시원의 땅 사막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사막은 광활하고 척박한 땅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놀라운 생명력과 잠재력이 숨어 있다. 극한의 조건에서도 다양한 생물종이 적응하고 존속할 수 있는 독특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오랫동안 생명의 기원을 작품의 주제로 삼아온 작가가 사막을 작품의 주제로 선택한 것은 당연하다.
그가 뉴욕에서 공부하던 시절, 학교 암실에서 하루 15시간 이상을 사진과 씨름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방황했을 때, 어두운 암실이 엄마의 자궁처럼 편안하게 느껴질 때까지 작가는 암실에서 자신의 내재적 장소를 모색했다고 한다. 작가는 사진에 쓰이는 화학약품의 액체에서 생명을 지탱하는 모체의 양수를 연상하며, 그곳에서 부유하는 이미지에서 일종의 생명체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사진으로 환원되는 과정 속에서도 창작의 기쁨과 생명성을 연결할 정도로 생명력은 김우영 작가가 애정하는 작품 주제다. 김우영 작가에게 사막은 내밀한 은신처이고, 인내를 배우는 깨우침의 장소이자 영적인 위로와 안식의 집이기도 하다. 사막에서의 여행과 이동은 김우영 작가에게 자유이자,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며,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다.
풍경의 다중성
김우영 작가의 작업은 풍경을 재현해 실상를 전달하려는 보편적인 의도뿐만 아니라 다중적인 감정선을 예민하게 변주하는 감성으로 가득하다. 그의 작업은 비합리적이고 비의지적인 감정이 우연치 않게 만나는 지점에서 강인하면서도 여리고, 생명과 죽음이 함께하는 특별한 풍경이다. 그의 사진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나는 여정을 말하는 듯하고, 유형학적 사진 같은 중립적인 시선 위에 은밀하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던진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그의 손길은 알 수 없는 호흡의 절박함으로 느껴지고, 하루를 채워가는 일상의 평안은 고독과 침묵으로 위로받는 듯하다. 작가는 작품에서 사물이 주는 확실성과 불확실성, 익숙함과 낯섦,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등 중첩적 감성으로 가득한 이중적 구조를 변주하고 있다.
또한 김우영 작가의 사진은 공간을 압도하는 크기와 엄청난 작업량에 비해 예민하고 섬세하다. 거대한 사진 속에서 놓치기 쉬운 색감, 선, 질감 같은 소소한 디테일이 은밀하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은 여러 관점에서 이중성을 드러내는데, 남성적인 거대한 형식과 여성적인 섬세한 감성,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집착과 죽음에 대한 예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고, 또한 자유롭고 운동감 있는 서구적인 조형성과 명상적이고 동양적인 고요함이 공존한다. 그런 면에서 김우영 작가가 북미 산업도시 시리즈와 한국의 한옥 시리즈를 함께 완성한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김우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풍경의 형태적 아름다움만을 표현하기보다는 사물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생명, 죽음, 삶의 흔적과 개인의 감성들이 함축된 풍경을 선택해 중첩적인 감성을 통해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듯하다. 그의 사막 시리즈는 개인적인 이야기이자, 다채로운 감성이 모호하고 몽환적으로 펼쳐지는 공간이다. 그의 작품은 추상과 구상, 빛과 물성이 공존하는 다중적 화면으로 섬세한 그의 감성에 초점을 맞추어 사막의 풍경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은 우리에게 매혹적인 여정을 열어줄 것이다. 그의 사막에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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