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_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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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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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은 그저 아침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다. 저마다 밤과 이별한 사람들이 새날을 향해 나아가는 때다. 스스로 어둠을 벗고 희붐한 새벽 대지를 향해 길을 떠나는 이들은 모두 자기 삶의 탐험가다. 〈THE VASTNESS II〉는 김우영의 새벽 낯선 시간들이 화소가 되어 쌓인 것일지 모른다. 태양이 지상의 모든 것에 그림자를 드리우기 전, 빛의 왜곡이 없는 사물의 본상과 마주한 순간들의 총합. 그의 이야기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캘리포니아 동부 데스밸리. 초목의 활착을 허락하지 않은 단단한 암괴들이 저마다의 색과 농담으로 첩첩이 포개져 있는 압도적인 풍경 속에서 그는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고 했다. 거친 대지 위에 얇은 비박용 매트리스 위에서 밤을 보내고 맞이한 새벽은 도시에서 되풀이되던 여느 아침과 달랐다. 명상을 하는 이들이 맨발로 대지를 느끼는 일을 어싱(Earthing)이라 부르는 것처럼, 그는 온몸으로 지구와 만난 모양이다. 접지(接地)한 몸으로 스며드는 대지의 기운이 그의 상처들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새벽은 그렇게 정신의 근육에 새살이 돋는 시간이었다.
융기하기 전 태고의 바다를 기억하는 소금사막 한가운데 홀로 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래바람 앞에 엎드려 묵묵히 자기 생을 견뎌온 길가의 풀과 키 낮은 떨기나무 앞에서는 몸을 낮추고 작고 여린 것들과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김우영의 몸을 통과했을 무수한 새벽이 펼쳐 보이는 〈THE VASTNESS II〉가 고요하지만 적막하게 느껴지지 않은 이유다. 황량하고 쓸쓸해 보일 법한 풍경들과 마주하는데 자꾸 ‘괜찮다 괜찮다’ 다독이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의 몸으로 스며든 어머니 지구의 숨결이 그렇지 않았을까.
대개의 사진들은 2007년 김우영이 돌연 모든 활동을 접고 홀연히 미국으로 떠난 그 무렵 마주한 풍경들이라고 했다. 그는 거스를 수 없는 존재를 떠올리게 하는 대자연의 품에서 다시 일어서는 힘을 얻었다.
“오래전에 약속한 것들을 이제 조금씩 보여주려고요.”
2005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아름다운 약속〉 전에서 만난 김우영은 앞으로 ‘공기’에 대한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름다운 약속은 동갑내기 산악인 엄홍길과 동행한 에베레스트를 그만의 방식으로 기록한 전시였다. 수목한계선 너머 히말라야의 ‘희박한 공기’들이 그에게 어떤 영감을 준 것일까. 그의 말은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하던 욕망의 산들 그 너머를 바라보며 하는 다짐처럼 들렸다.
그 후로 해외에 나가 오래도록 소식이 없던 사람은 몇 년 만에 한국에 돌아올 때면 늘 새로운 전시를 열어 초대했다. 2014년 사람들이 떠나간 도시에 남은 텅 빈 폐허들 위에서 길어 올린 화려한 색채의 향연 〈Boulevard-Boulevard〉(박여숙화랑, 서울)과 2016년 최순우 옛집에서 만난 한옥의 색다른 해석 〈김우영 사진, 우리 것을 담다〉(최순우 옛집, 서울) 그리고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아우른 2017년 〈시간, 공간, 우연성: 김우영의 철학적 풍경〉(갤러리 시몬, 서울)까지. 최근 2021년 〈Poetics of Tranquility〉(중정갤러리, 서울)에서 만난 김우영의 눈빛은 평정의 시학이라 이름 붙인 그의 사진들처럼 편안해 보였다. 이제는 흔들림 없이 어떤 시원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만난 작품들 앞에서 문득문득 그의 오래된 약속이 떠올랐다. 대자연에서 느끼는 공기의 질감과 색은 도시와 다르다고 했던 말들.
〈THE VASTNESS II〉는 전시장보다 먼저 김우영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청계천변 세운상가 꼭대기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오래전 은행이 있던 자리를 리모델링한 공간이었다. 은행에서도 금고가 있던 한쪽 벽면을 데스밸리에서 찍은 사진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돈과 금괴를 쌓아두던 자리를 지그시 눌러버린 압도적인 풍경. 배치만으로도 한 편의 멋진 퍼포먼스였다. 모든 게 김우영다운 선택이었다. 그곳에서 꺼내 보여준 김우영의 오래된 약속들 속에는 처음 세상이 생겨날 때, 무엇이든 새로 태어나게 하는 생명의 원형질 같은 것이 거기 있었다. 그가 도달했던 낯선 풍경들이 이상하게도 돌아갈 곳에 대해 담담하게 알려주는 이정표처럼 여겨진 이유였다.
이전 〈Boulevard-Boulevard〉 작업에서 한 편의 ‘차가운 추상’ 같은 그림 속으로 굳이 작가가 발 디딘 도로를 프레임 안으로 끌어들인 것처럼, 이번 대지의 연작들 위에도 어김없이 그가 걸었던 또 돌아가야 할 길들이 화각 속에 걸쳐 있다. 똑같은 곳을 다녀온 다른 풍경 사진들이 우리를 유혹하는 여행 상품 같다면 그의 사진은 분명 다른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그 앞에서 일일이 그곳이 어디인지를 물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다. 〈월든〉의 소로가 “중요한 건 ‘얼마나 멀리 갔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깨어 있는가’다. 너 자신의 강과 바다를 탐험하라. 그리하여 제국의 야심이나 무역을 위해 봉사하는 콜롬버스가 아닌, 생각하는 콜럼버스가 되라”고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대정신은 그 무렵 사람들이 도달한 의식 수준에 따라 멀쩡한 하천을 덮어 길을 내었다가 다시 뜯어내기도 한다. 김우영의 작업실이 있는 세운상가에서 내다보이는 청계천변에는 이미 빼곡하게 초고층 빌딩이 산을 가리고, 예지동 시계골목이 있던 밑바닥에서는 재개발을 위한 유적 발굴이 한창이었다. 오래전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세운상가는 세워질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시대정신의 첨단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김우영의 사진도 그렇다.
그는 요즘 새벽 시간 종묘와 청계천변 일대를 매일 걷는다고 한다. 오래된 도심 한복판에서 서로 다른 시간과 가치가 중첩된 채 흘러가는 풍경 속에서도 김우영의 탐험은 계속되고 있었다. 시대정신의 첨단에서 근원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일은 예술가의 숙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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