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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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30, 2014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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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은 도시를 찍는다. 한 때 상업사진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던 그는 이제 캘리포니아 인근의 핀란이란 작은 사막도시에 살며 인적이 끊긴 지역, 산업화의 끝자락만 남은 도시의 단면을 추상화면처럼 포착해낸다. 적막감이 감도는 사진들은 새로운 구도와 색채가 세련된 미감을 우리 앞에 선사한다. 김우영이 ‘Boulevard, Boulevard ’라는 타이틀로 4월 2일부터 21일까지 강남구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홍익대 도시계획과와 대학원(시각디자인)을 졸업한 뒤, 뉴욕 School of Visual Art에서 사진학(석사)을 전공한 그는 뉴욕에서 활동하던 7년간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전시를 통해 보기 드문 대형 이미지를 선보였다. 자연과 도시, 산업화로 변모해가는 도시의 모습을 관조적으로 포착한 사진작업이었다. 이번 서울에서의 개인전에 출품된 사진도 모두 ‘도시’를 주제로 하고 있다. 김우영은 요즘 캘리포니아 근교의 아름다운 사막 핀란에 살며, 주변의 도시 풍경을 찍는다. 핀란은 사막, 바다, 햇빛, 공기, 바람 같은 원초적인 자연을 품고 있고, 산업화의 마지막 상징인 버려진 공장지대 또한 남아있는 곳이다. 김우영은 시대로부터, 사람들로부터 버려진 이곳에서 기묘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아예 눌러앉았다. 삶의 터전도 옮겼다. 늘 마주하며 관찰하는 것에서 ‘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다. 화려한 옛 영광을 엿보게 하는 페인트가 칠해졌던 벽면은,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그곳에 태양빛이 쏟아져내리면 다양한 질감이 만들어진다. 계절에 따라 도시는 매번 달라진다. 심지어 동틀 무렵, 한낮, 해가 질 무렵 등 시간에 따라서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김우영은 자신만의 시선과 카메라 테크닉으로 이같은 풍경을 포착한다. 미묘한 면 분할과 색채, 빛과 그림자만으로 직조된 그의 사진은 간결한 가운데 풍부한 미감을 전해준다. 이는 그가 살고, 머무르며 ‘발견한 장소’들과 온전히 하나가 됐기 때문이다. 자연과 문명의 변천을 함축하고 있는 눈앞의 풍경을 진솔하게 담아냈기에 가능한 것이다. 때론 무채색과 수평의 날카로운 선만으로 도시의 과거가 유추된다. 잿빛 창고 건물의 한 단면을, 툭 자르듯 삽입된 오렌지색 지붕과 벽면의 묘한 색채 분할을 포착한 ‘Wilshire blvd’는 이번 출품작 중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오른쪽 끝으론 나무 한그루가 마치 이 도시의 변화를 오랫동안 지켜본 양 말없이 서있다. 도시의 단면을 표현한 비구상 회화 같은 사진이다. 비가 내리는 베버리 힐스의 거리를 찍은 사진도 아름답다. 도로와 인도를 구분하는 경계석의 붉은 선과 야트막한 흰색 건물이 묘한 대비를 이룬다. 흰색, 붉은색, 푸른색이 기하학적 대비를 이루는 ‘Spring’이란 사진은 군더더기 없는 구도와 색채 대비로 날이 ‘확’ 서있다. 셔터가 내려진 공장의 앞뜰을 찍은 사진은 인적은 간데없고, 풀만 무성하다. 자동차는 흔적만 남아 있다. 그러나 속도와 바람이 사진 안에 보인다. 노동과 휴식, 영광과 상처, 진실과 거짓이 말없이 교차하고 있다. 김우영의 사진은 컴퓨터의 이미지 보정을 거치지 않은, 실제 도시 풍경을 오랜 시간 기다리고 관조하며 찍은 사진이다. 작가의 남다른 감각을 통해 획득된 사진이다. 작가와 카메라와 도시, 이 세 요소는 일직선상에 놓이며 온전한 합일을 이룬다. 시공간을 초월하며 다중층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김우영은 한동안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포토디렉터를 맡았던 ‘Neighbor’를 비롯해 5개의 매체를 론칭시켰다. 패션 디자이너, 그래픽 디자이너, 건축가, 영화감독, 기업가를 파트너로, 우리의 눈과 감각, 마음과 감성을 자극하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이렇듯 한국 상업사진의 새 시대를 구가했던 그는 2007년 하와이대학에서의 초빙을 계기로 상업예술의 정글에서 빠져나와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그리곤 색채와 조형, 그들이 미치는 시각적, 심리적 효과를 아우르며 이제 자신만의 세계를 빚어내고 있다. 그가 카메라로 잡아낸 추상회화 같은 단순한 사진들은 기품 있는 색감과 세련된 구도가 보는 이를 매혹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