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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죽어야 사는 폐허 - '김우영 사진전' 리뷰

임우기_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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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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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한국인들은 거의 아파트에서 먹고 자고 생각한다. 도시인들은 이른 아침 아파트를 나와 콘크리트 건물 속에서 일하고 다시 아파트 속으로 기어든다. 지식인 또는 문화인들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콘크리트 구치소'에 갇힌 문화인들은 이 거대 도시로부터 획일화된 사유와 메마른 감각을 주입받고 부단히 세뇌당한다. 그래서 이러한 도시적 욕망의 괴로운 자의식이 곧잘 꿈꾸는 곳은 도시의 대척점으로서의 시골이거나 종교적 초월 공간이다. 그러나 문화적 지식인이 도시를 탈출할 때, 대중은 이 욕망의 살벌하고 삭막한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며 도시 속으로, 콘크리트의 살풍경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간다. 성수대교나 청계천은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젠 폐허다시피한 청계천 콘크리트 공간을 없애려는 서울 시청의 결정은 그 자체로서 도시는 자신의 폐허를 통해 생을 이어간다는 폭력적인 역설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즉 파괴와 폐허는 도시개발의 불가피한 조건이 된다. '그 이후'란 타이틀이 붙은 김우영의 사진전은 도시적 욕망의 깊은 그늘을 독자적 미의식으로 재생시키는 비범함을 보여준다. 그는 폐허가 된 청계천, 무너진 성수대교의 잔해, 삭막한 미아리 텍사스 주변 건물들을 촬영한 흑백 톤의 포지티브 통필름(150cm x 100cm)과 구름 낀 저녁놀. 밤바다, 꽃밭, 나무 야적장, 녹색 나무들이 있는 아스팔트 따위 도시의 비근한 풍경들을 컬러로 찍은 인화지를 오버랩시킴으로써 도시의 폐허(죽음)와 그 폐허 속 욕망(삶)을 병치시킨다. 그 거대한 필름, 인화지의 병치는 우선 도시란 죽음의 메타포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 예술적 노력이 도시의 우울과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 데에 김우영의 예술적 성취가 있다. 흑백톤 통필름(죽음의 풍경)을 통과해 컬러 인화지(도시의 생활 세계)를 함께 바라보게 함으로써, 도시의 처참한 죽음이 도시의 욕망을 성찰케 하고 마침내 정화에 이르도록 하는 예술적 역설을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도시 탈출이나 초월이 아니라 도시적 욕망의 짙은 그늘을 직접 찾아감으로써 그로부터 도시적 욕망의 정화와 재생의 빛을 찾아내고 있다는 점, 이는 작가가 한국 예술계에 던지는 귀중한 메시지다. 전시실 한쪽면을 채운 싸구려 여인숙 내부의 너절한 잡동사니 사진들의 집합은 이러한 김우영의 예술 의식을 다시 한번 뒷받침한다. 원색으로 프린트된 사진 앞에 서면 도시 주변부적 군상들의 욕정의 비린내와 고린내, 악다구니 혹은 도시적 소음 따위가 코와 귓속을 파고든다. 김우영은 욕망의 파노라마를 자연색으로 되살리기보다는, 마치 색동옷 색감과 같은 원색으로 인화했다. 원색은 어떤 생명력이 느껴지는 능동적인 이미지를 낳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의 욕망들도 저마다 소박한 꿈과 생의 의지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작가는, 비유컨대, 때론 순수한 설렘으로 소풍을 가는 도시의 누추하고 지친 욕망들에게 원색의 색동옷을 입히고 싶은 것이다. _

© 2023 by KIM WOO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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