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희 _ 매거진 〈페이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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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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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사진 〈THE VASTNESS I〉 연작을 만나면서 청년 시절의 내 영혼을 뒤흔들었던 강은교 시인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혈관에 푸른 피가 출렁거리던 소싯적에 오로지 내가 품었던 열망은 세상을 구원할 단 한 편의 시, 그러니까 사람들의 영혼을 울리는 시를 만들어 지치고 탁한 영혼을 정화해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은 애석하게도 시와는 좀 멀어져 살고 있다. 사실 나는 시의 원형의 오라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 게 맞다.
김우영의 사진 〈THE VASTNESS I〉의 연작 사진을 하나하나 보면서 강은교의 시 ‘우리가 물이 되어’가 마음에 얽혀 들었고, 이윽고 나는 강은교의 시 ‘우리가 물이 되어’가 담긴 케케묵은 시집을 펼쳐놓고 시를 암송하며 김우영의 물 사진을 깊은숨을 들이쉬며 장님이 손가락으로 점자를 감지하듯 공들여 들여다봤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 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處女)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하략)
- 詩 강은교
김우영의 물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처음으로 든 생각은 수순처럼 ‘물은 생명의 원천’이라는 사실이었다. 사진 속 다양한 양상의 모양새와 색과 질감 등으로 이루어진 물들은 생명을 싹틔우고 발육시키는 원천이다. 이는 유전학, 생명과학, 신학, 철학을 통틀어 입증된 사실이자 생명의 증거이다. 그러나 ‘생명의 원천’ 이야기로 김우영의 사진에 대한 감흥을 피력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그러면서 떠올린 시에 대한 거론은 인간 김우영하고도 연관성이 있다. 20여 년 전쯤, 역삼동에 버젓하게 지어진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난 그는 상업 사진계에서 군계일학 같은 존재였다. 그때 그가 찍은 상업 사진 몇 편을 보며 느꼈던 것, 또한 유명 사진가가 으레 구사할 법한 허세 같은 게 없던 그의 태도를 보며 느꼈던 건 이 사람은 사진도 사람도 시와 닮았다는 것이었다. 사람이든 사진이든 구구절절 장황하지 않았다.
시에는 일정한 운율과 함께 상징과 함축, 은유와 비유, 반어와 역설 등 시를 이루는 기본적인 구성 요소들이 존재한다. 김우영의 사진에는 늘 이런 시의 중요한 요소들이 존재하고, 이 점은 이전의 작업에서부터 현재의 사진 작업까지 공통적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집 〈THE VASTNESS I〉에 묶인 〈Boulevard-Boulevard〉 연작 고스트 타운의 사진들을 보면, 한때 발달했던 도시가 사람들이 떠나고 난 뒤 황폐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폐허의 버려진 집들에서 김우영은 생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화려하면서도 뚜렷한 색감의 공간들을 포착해냈다. 공간의 양감과 채색이 도드라진 색의 미학은 사진으로 활개 돋친 듯 그 마력을 드러내며 시적 상징과 대비, 역설을 한껏 드러냈다.
이번 〈THE VASTNESS I〉 연작 사진집이 나오기 직전,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왜 물을 주제로 사진을 찍은 것인가?”
그는 처음엔 물이 거대한 생명의 원천이어서 땅 다음으로 물을 찍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찍다 보니 물은 물질적인 것이면서도 정신적인 측면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고 했다. 실로 많은 생명이 물에 기대어 살고 있는 게 먼저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작업을 하면서 점점 더 깊이 물의 압도적인 형태, 신비로운 패턴, 형이상학적인 면모에 빠져들게 되었다는 것. 이는 마치 우주의 심연에 호기심이 불거지듯 물의 철학적인 양상을 탐하게 되는 것과 같은 맥락의 일이라며 그런 물의 웅장함과 율동의 박진감, 때론 우주에 홀로 떠 있는 것만 같은 물의 고요함에 그는 전율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한 물의 다양한 색감의 아름다움에 숨이 멈출 듯 경이에 젖을 때가 잦았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물을 만날수록 물의 입자, 원자, 분자 같은 걸 느낄 수 있었고, 이는 인간이라는 유한한 존재가 죽어 어떤 원소로 전환되었을 때, 우주의 순환 궤도에 편입되는 것과도 같은 어떤 질서가 물에 연결되어 있다는 직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런 생각이 이번 〈THE VASTNESS I〉 연작에 오롯이 담겨 있다.
그는 이번 〈THE VASTNESS I〉 사진 작업을 위해 미국의 요세미티, 옐로스톤 등에서 촬영을 했고, 아이슬란드에서는 레이캬비크, 레이흔유크트, 싱크베틀리르 등지에서 렌즈를 들이댔으며, 중국과 티베트에서도 물의 다양한 양상을 찍었다.
그는 〈Boulevard-Boulevard〉 연작을 찍기 위해 미국 서부 지역의 고스트 타운을 배회할 때나 〈THE VASTNESS I〉 연작을 위해 물이 흥한
지역을 다닐 때나 여전히 시간에 쫓기지 않고, 시간을 추적하지도 않으며 어떤 적중의 시간을, 어떤 명중의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이것은 목적을 위해 셔터를 누르는 게 아니라, 어떤 ‘영원과도 같은 순간’, 그러니까 궁극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마음을 텅 비우고 순례를 하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나는 다시 각양각색 다층으로 푸르고 아름다우며 웅장하고도 격하게 혹은 잔잔하게 흐르며 율동하는, 그러다가 천만년 단단히 얼어 있는 김우영의 물 사진을 관람한다. 이 사진들은 단시간에 찍은 것이 아닌 10여 년에 걸쳐 찍은 터라 수만 커트에 달한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보는 물의 사진은 전 세계 물의 역사를 증명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의 신념의 결과물을 눈으로 껴안다 보면, 기교와 스킬보다는 자연 그대로인 모습을 포착한 그의 〈THE VASTNESS I〉 연작 시리즈가 본질을 탐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된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가지의 정보가 빠르게 디지털 랜선을 통해 우리 삶을 스쳐가는 이 시대에 김우영 사진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의 물 사진을 차분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부유물이 가라앉고 맑게 정화된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것은 궁극의 물의 면면을 보며 마주할 수 있는 평화이자 정묘한 기쁨, 그리고 새로운 명상 방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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